빈대떡 한 장에 담긴 30년의 세월
광장시장의 북적이는 먹거리 골목,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유독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 있습니다. 맷돌 돌아가는 소리가 리듬처럼 들리는 그곳에서 30년째 빈대떡을 부치고 있는 박순자 할머니(72세)를 만났습니다.
고집스럽게 지켜온 맷돌의 방식
박 할머니의 빈대떡이 특별한 이유는 '방식'에 있습니다. 요즘은 기계로 녹두를 갈아내는 곳이 많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무거운 돌 맷돌을 고집합니다. 맷돌로 천천히 갈아낸 녹두라야 입자가 살아있고, 구웠을 때 그 식감이 제대로 나온다는 것이 할머니의 설명입니다.
"사람들은 편한 길 놔두고 왜 힘들게 하냐고 하지만, 손님들은 다 알아요. 기계로 간 건 입이 먼저 알아차리거든. 30년 동안 찾아주는 단골들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배신을 해."
기름 냄새 가득한 새벽의 시작
할머니의 하루는 시장이 깨어나기도 전인 새벽 5시에 시작됩니다. 그날 쓸 녹두를 씻고 불리는 작업부터가 전쟁입니다. 수천 장의 빈대떡을 부쳐야 하는 고된 노동이지만, 할머니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절, 광장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박 할머니 역시 이곳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켰습니다.
시장, 사람 그리고 정(情)
인터뷰 도중에도 할머니는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넵니다. "애기 엄마, 오랜만이네!", "총각, 오늘도 맛있게 먹고 가!" 할머니에게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사랑방입니다.
할머니는 최근 젊은 친구들이 시장을 많이 찾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예쁘게 차려입은 젊은 애들이 와서 맛있게 먹고 사진도 찍고 하는 걸 보면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아."
마치며
빈대떡 한 장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할머니의 30년 세월과 정성은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광장시장에 방문하신다면, 맷돌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 소리 안에는 우리네 삶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